Hazy/바보 상자에 말 걸기

<연애시대> 유리씨, 파이팅!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10. 18. 02:01

 사실, <연애시대>가 <네 멋대로 해라>나 <아일랜드>나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들처럼 나를 휘어잡지는 않는다. 하지만 뽀샤시한 화면과 선남선녀들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현실감 있게 느껴지는 매력이 있어서 거의 한 회도 빠지지 않고 시청하고 있다.  

 동진과 은호의 애매한 감정과 그에 대한 두려움이 표현되는 대사도 좋고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주인공들이 느끼는 삶과 사랑에 대한 단상들도 좋다. <소울 메이트>가 적나라한 연애 지침서라면 <연애시대>는 마치 사랑할 때 갖는 마음들을 표현한 단문 모음집 같다.  

 여기에 더해 회가 거듭할수록 동진과 은호의 이야기 못지 않게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에도 시선이 간다. 특히 이번 주에 방영된 7회에서는 '블랙 데몬' 유리 씨가 내 마음을 붙잡았다.  

 

  유리 씨는 프로 레슬러다. SBS의 인물 소개에 보면 자신을 왕따 시킨 아이들에 대한 복수를 꿈꾸며 프로 레슬링을 시작한다. 그녀는 보통 기준의 미인하고는 거리가 아~주 멀다. 꽤 큰 몸집을 가지고 있고 아줌마 파마를 했다. 거구의 몸집도 레슬러다운 근육질의 몸매보다는 동네 아줌마의 몸매에 가깝다. 블랙 데몬 분장의 그녀는 험상궂은 인상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그런 그녀가 '동진을 좋아한다'고 고백할 때는 비록 금세 그것이 미연을 떼 놓으려고 한 거짓 고백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마음이 쿵 내려 앉는 느낌이었다. 은호처럼 나도 그것이 단지 작전상의 거짓 고백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녀가 동진을 단념한 이유가 어쩌면 단지 은호와 동진의 감정을 알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친구의 전남편이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어쩌면 '연애 상대'로서의 여자가 되기를 단념했는지도 모른다. 링 위에서도 그녀는 우락부락하고 험상궂은 악역이고 언제나 지는 역할이다. 이기는 쪽은 긴 생머리에 늘씬한 몸매를 드러낸 하얀 옷을 입은 '화이트 엔젤'이다. 설사 동진에 대한 마음이 큰 울림이 아니라 작은 흔들림이었다고 해도 그녀가 동진을 좋아했다면, 그 마음을 접을 때는 그런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링 위에서도 세상에서도 예쁘지 않은 나는 지는 쪽'이라는 마음 말이다. 그렇게 단념한 동진이 은호와의 새로운 출발이 아니라 섹시한 미녀와의 만남을 이어 가는 것을 보는 유리 씨의 마음은 어땠을까? 유리 씨 말대로 은호와 동진 사이의 감정이 단념의 가장 큰 이유였다 해도 나는 유리 씨가 조금이라도 느꼈을 비애가 느껴지는 듯했다.  

 

 마지막 시합을 끝내고 술집에 모인 친구들 앞에서 털어 놓는 그녀의 말을 흘려 들을 수 없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특히 여자의 경우에는 더욱, 외모로 많은 것이 결정되는 세상에서 '블랙 데몬'뿐 아니라 여자 '나유리'도 대부분의 경우 '지는 쪽'이었을 것이다. 특히 사랑의 감정 앞에서 얼마나 많은 날들을 단념하며 보내야 했을까?  

 마지막 시합에서야 겨우 '이기는 쪽'이 된 유리 씨, 인생에서도 여자로서도 '이기는 기쁨'을 알게 됐으면 좋겠다.  

 

 유리 씨가 말했다. '여자 취급은 처음이었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마음으로 외치고 있었다. '유리 씨,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