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zy/바보 상자에 말 걸기

<환상의 커플>홍자매의 당연하고도 특별한 접근법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10. 18. 02:12

요즘 시간에 쫓기며 매진하는 일이 하나 있어서....그것만 끝나면 매주 <썸데이>의 감상문을 쓰고, <환상의 커플> 종영 기념 감상문도 하나 써야지...라고 마음 먹고 있었는데..다른 곳에서 <환상의 커플>에 대한 기사를 보고 탁 필이 받아서....결국 <환상의 커플> 감상문을 쓰게 됐네요..^^ 

 

생각해 보면 안나의 싸가지 없음에도 이유는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싸가지 없음이 바르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누구라도 평생을 마음을 열 만한 사람도 없이, 남보다 많이 가진 채, 모든 사람들이 자신에게 잿밥을 바라고 친절과 웃음을 보인다면, 그것을 어릴 때부터 너무 잘 알고 성장했다면, 안나처럼 마음도 닫고 아무도 안 믿고 안하무인이 되지 않겠냐는 거다.  

 

그런 안나가 상실이 된 후 '연인의 사랑'으로 개과천선에 환골탈태까지 하는 드라마가 아니라는 것이 바로 이 드라마의 미덕이다. 서병기 전문기자의 말처럼 이 드라마는 도도하고 못된 여자가 착한 여자 되기는 아니라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에서 우리는 안나의 변화를 본다. 안나는 상실이 된 후에도 기억은 상실했을지언정 그 도도함과 싸가지 없음은 잃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나와 상실 사이에는 와관 외에도 차이가 있다.  

 

안나는 상실이 된 후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 단지 기억을 잃었기 때문에 만나는 모든 것이 낯선 것이 아니라 그녀가 예전에는 넘어 오지 않았던 경계 이쪽의 세상을 만난 것이다. 자장면과 막걸리 10만원 정도의 잡종개도 그 세상의 일부지만 그녀가 만난 정말 새로운 것은 '마음'이다.  

 

홍자매는 안나의 마음의 빗장을 열기 위해, 매우 당연하지만 보통의 트랜디 드라마에서 선택하지 않기에 특별해진 접근법을 사용한다. 보통의 로맨스 또는 맬로를 표방하는 수많은 트랜디 드라마에서 싸가지 없는 주인공의 변화는 '사랑' 또는 '연인'으로 그 모든 과정이 생략되고 개연성이 없어도 인정을 받는다. 그러나 대신 홍자매는 안나의 마음의 빗장을 열 수 있는 꼭 맞는 열쇠를 주변 인물들의 손에 쥐어 줬다. 그것이 바로 상실이 만난 새로운 것, 마음이다. 상처에는 꼭 맞는 약이 있는 법. 연인의 사랑이 언제나 만병통치약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상실이 등장하기 전부터 그 마을 사람들은 부족한 사람과 나누는 법을 알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천사표의 얼굴로 강자를 대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그들이 강자와 나누며 살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들에게는 상실도 과거가 없는 부족한 사람이다. 아니, 사실은 모두가 무언가가 부족한 존재이고 그들은 상실과도, 그 누구와도 서로 부족한 것을 나누고 부족으로 인한 상실감을 채워줄 사소하고 보잘 것 없는 마음을 나눈다.  

물론, 경계 이쪽의 사람들도 모두, 언제나 천사표이기만 한 것은 아니고 심지어 꽃다발과는 마음을 주고받기는 커녕 대립각을 세우지만 그것 역시 나상실(조안나)이 마음을 사용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 아닐까?  

 

나상실이 싸가지를 상실한 다른 드라마의 주인공과 다른 점은 연인과의 관계 속에서 다른 까칠했던 관계들이 눈 녹듯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관계들로 인해 낮아진 마음의 문턱 덕에 장철수와의 관계도 더 부드러워지고 장철수에 대한 마음에 솔직하게 접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상실이는 전화에 '장철수, 사랑해~'라고 속삭이고는 '난 이미 말했어. 상처 받아도 할 수 없어'라며 마음을 준 이후의 후유증에도 대범해진다. 만일 다른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다면 연인과의 사랑이 다른 모든 변화를 가지고 온 것이라면 장철수와의 관계에서 받을지 모르는 상처 앞에 그렇게까지 대범할 수는 없을 것이다.  

 

홍자매의 이 당연하고도 특별한 접근법은 나상실이 조안나로서의 현실을 직시한 후에도 상처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오옷! 이렇게 해서 최근 들어 가장 짧은 시간 안에 감상문 하나를 완성했습니다..ㅋ  

나중에 나상실의 어린이 교육법에 대해 함 써 보고 싶다는 강력한 욕구도 밀려오는데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