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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zy/바보 상자에 말 걸기

<썸데이> 1,2,3회-그들을 향한 나의 예견된 애정

 

 

 

 

 난 영화를 볼 때 언제나 '충분히 즐기고 감동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 극장 의자에 팔짱 끼고 기대어 앉아 '어디 한 번 잘 만들었나 보자'가 아니라 마치 고대하던, 첫 출근 날처럼 설레고 벅찬 감정으로 광고들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드라마를 볼 때도 마찬가지다. 물론 모든 드라마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기획 단계나 광고 단계에서 소위 '꽂힌 드라마'라면 첫 방영일 광고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심정이 꼭 그렇다.

 

 <썸데이>는 그런 드라마다. 드라마 내용이나 예고편에서의 느낌 뿐 아니라 드라마 전문 제작사의 사전 제작 드라마라는 것도, 배두나와 김민준이 출연한다는 것도 모두 나를 끌어당기는 매력적인 요소였다.

 그렇지만 이런 것을 차치하더라도 나의 <썸데이>를 향한 애정은 이미 계획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은, <썸데이>의 나래이션이 고진표의 목소리라는 데에 책임이 있다.

 

 드라마를 볼 때 나는 주인공이 아니라 받지 못하는 사람(적어도 스스로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존재)에게 감정을 이입한다. <네 멋대로 해라>에서는 미래에게, <다모>에서는 장성백이 아니라 종사관 나으리에게, <아일랜드>에서는 중아와 재복이 아니라 강국과 시연에게 <연애시대>에서는 유리 씨의 짤막한 등장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리고 이제는 <썸데이>의 진표와 혜영의 차례다. 

 

 매회 끝날 때 진표의 목소리가 심장을 두드린다. 이건, 그의 아픔이 예고된 바보놀이의 시작이다. 그는 시작부터 끝까지 아플 것이고 야마구치 하나와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는 순간에도 아플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호의를 제공하고 '좋아해요'라고 말해도 반응 없는 사람에게서 사랑은 커녕 친절한 미소도 받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알면서 떨어진다. 그건 아마, 예견하건대, <썸데이>의 주인공들이 모두 그럴 것이다.

 

 그들은-특히 진표와 혜영은- 다른 멜로 드라마의 주인공들처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여기까지 와 버렸어'나 '첫 눈에 시작돼 버렸어'라는 상투적인 대사는 읊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작은 시작의 순간을 알 것이고 그것이 깊어지는 과정 중에도 모든 것을 느끼지만 피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리고 언제나 또 다시 대답없는 감정이 시작된 걸 알면서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두는 나와 진표 사이에 연결선을 두고 나는 이 이야기를 지켜 볼 것이다. 그의 대사를 암기할 준비와 울 준비를 한 채.

 

 '이야기'의 관건은 사실 '얼마나 평범한 사람들이 주인공이냐'에 있는 것은 아니다. 주인공이 서른의 실버타운 원장과 애니메이션 회사 이사고 스물에 극찬을 받은 일본인 만화가에 어린 나이에 가족을 잃은 헌터 같은 흔치는 않은 사람이라 해도 그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감정 전걔의 과정이 '공감'을 부르는 것이라면 그건 '우리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이미 진표와 혜영의 이야기는 내 것이 되어 가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이제 겨우 4분의 1을 지났을 뿐이다. 이제 겨우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는 즈음에 이른 판단일지도 모르지만 <썸데이>는 2006년 끝자락에서 심난함을 떨치지 못하는 내게 길동무가 될 것이다.

 

 

 

<썸데이>의 싸이 홈페이지 : 사랑이 시작되는 날

매거진 T의 <썸데이> 기획 기사 : 달려라 <썸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