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모어 걸스는 현재 미국의 워너브라더스 방송국에서 여섯 번째 시즌을 방영 중인 드라마다. 우리 나라에서는 온스타일에서 다섯 번째 시즌을 방영하고 있다. 하지만 <SATC>나 <ER>, <위기의 주부들>처럼 국내에서 화제 속에서 방송되거나 탄탄한 매니아를 가지고 있는 드라마가 아니다. 여기에서 내가 이 글을 굳이 쓰는 이유가 나온다. 내 생각에 무지 좋은 것인데 남들이 모르면 자꾸 알리고 싶은 기분.. <Gilmore Girls>는 간단하게 말하면, 열 여섯 살에 임신하고 집을 나와서 혼자 딸을 낳아 키우면서 사는 Lorelai Gilmore와 그녀의 딸 Rory를 중심으로 하는 가족 드라마다. |
이 드라마의 초점은 일찍 아이를 낳은 싱글맘의 눈물 겨운 세상살이가 아니다. 제목에서 말하는 'Gilmore Girls'는 좁은 의미로는 로렐라이와 로리 두 모녀를 의미하지만 넓은 의미로는 로렐라이와 그녀의 엄마 에밀리의 관계, 로리와 그녀의 엄마 로렐라이와의 관계까지 포함한다. 즉, 두 개의 상이한 모녀관계가 전개되는 모습을 중심으로 로렐라이의 일과 남자를 포함한 인간 관계, 로리의 꿈과 남자를 포함한 인간관계가 '스타즈 할로우-모녀가 사는 동네'와 예일대-네 번째 시즌부터'에서 펼쳐진다.
두 모녀의 일상은 눈물 겹기보다는 상큼 발랄 자유 분방하다. -심지어 우리 어머니 어느 날은 함께 보다가 매우 맘에 안 들어함이 역력한 목소리로 '저 엄마는 애한테 하나 도움이 안 돼!'라며 혀를 찼다.- 이 모녀가 가족을 제외한 세상과 갖는 갈등은 주로 싱글맘과 딸이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로렐라이는 어려서부터 자기 부모의 양육방식과 삶의 방식을 좋아하지 않았다. Gilmore 집안은 대대로 예일대를 나온 상류층-최고 상류층은 아니지만-이다. 로렐라이의 부모는 로렐라이에게도 고상하고 우아하며 어느 정도 포장된 모습을 '습득'하기를 바랐고 사립학교를 거쳐 예일대를 나와서 아이비리그 출신의 상류층 남자와 결혼하기를 원했다. 로렐라이는 부모의 바람과는 매우 동떨어진 삶을 살면서 자신은 '다른' 엄마가 되려고 한다.
에밀리-로렐라이 관계와 로렐라이-로리 관계 사이는 대조적이다. 전자가 아무런 공유점이 없고 틈만 나면 로렐라이를 자신이 원하는 삶의 궤도에 올려 놓고 싶어하는 에밀리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부모와의 접촉을 최소화하려는 로렐라이의 '눈치전선'이라면 후자는 항상 서로에게 귀와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들어 주며 이해하는, 딸을 믿기에 딸의 결정에 간섭하지 않는 로렐라이와 믿는 만큼 똑똑하게 처신 잘하고 엄마에게 좋은 동반자가 되는 로리의 '자유-애정전선'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시즌1을 처음 볼 때는 다른 드라마에 비해 많은 대사량을 소화하느라 숨 넘어갈 듯 읊어대는 대화들과 두 모녀의 시시덕거리는 대화 속에서 비죽비죽 삐져나오는 미국 대중문화를 훑는 표현들을 듣는 재미로 애청자가 됐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매우 부끄럽게도..로리의 '그놈' 제스와 로리 사이의 묘한 긴장감이 나이를 잊고 로렐라이 대신 로리에 감정이입을 하게 만들어서 한 에피소드라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때까지도 두 가지의 모녀 관계는 그저 서로 다르다는 것 외에는 별로 깊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제스가 빠져버린 이후에 '제스가 나와야 더 재밌는데..'라는 생각으로 몇 번의 에피소드를 보았는데 문득, 로리가 대학에 진학하면서 이 시리즈가 두 개의 서로 다른 모녀 관계에 더욱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보였다. 로리가 뒤늦은 사춘기 증세를 보이고 에밀리가 삶에서 자신의 위치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하면서부터.
왠지, 시리즈의 마지막에는 로렐라이와 에밀리가 '대화합'하는 뻔한 결론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로렐라이가 에밀리를 어느정도 인정하고 이해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지금 미국에서 방영되는 시즌6에서 삐딱선을 타고 로렐라이를 속썩이는 로리도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게 되지 않을까..?
**이 드라마를 보는 또 하나의 재미는 한국인 모녀의 등장이다.
제작자가 자신의 친구인 재미교포 여성을 모델로 해서 만들었다는 극중 로리의 친구 레인과 그녀의 엄마 Ms. Kim. 레인의 엄마는 지나치게 극단적이고 캐릭터화해서 편견을 줄 수 있는 면이 없지는 않지만 매우 종교적인 중년의 재미 한국 여성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재미교포 1세들의 한국/한국사회/한국인/한국문화에 대한 생각은 그들이 이 땅을 떠날 당시의 모습에 고정되어 있다고 한다. 설정상 레인의 엄마는 그녀가 젊었을 때, 레인을 낳기도 전에 한국에 온 것으로 보인다. 80년대 초반쯤. 그리고 매우 열성적인 기독교인이다. 기독교 문화권인 미국인의 시각에서도 근본주의적인 종교관을 가진 한국의 기독교인은 보수적인 면-생활의 측면에서도-을 가지고 있는데 그런 점을 매우 특화하여 보여주는 캐릭터이다.
물론 다소 연구가 부족한 면 -1. 레인의 엄마가 레인에게 추천한 진학할 학교들은 모두 종교재단 학교인데, 제칠일 안식일 교회,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한국의 기독교인이라면, 특히 레인 엄마처럼 엄격한 기독교인이라면, 교리가 전혀 다른 교단의 학교로 아이를 진학시키지 않는다. 그것도 저렇게 종류별로 모두 다 추천하는 일은 절대 없을걸.....
2. 설에 식사 후 모여 앉아 전통악기 연주(가야금, 장구, 해금 등등)를 하더군..타향 살이 중 동족끼리 설을 기념하며 그럴 수는 있겠지만 다소 생뚱맞고 생소했다는....-도 있지만 외국 시리즈 물을 보다가 외국인 입에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나 '해금'과 같은 단어들이 튀어나오는 걸 듣는 기분도 새롭다.
*** 이 글은 다음에 <로리, 대체 너 왜 그러니?>를 쓰기 위한 전초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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