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 올 한 해 많은 사람을 TV 앞에 붙들어 놓았던 MBC <선덕여왕>이 62회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16부작이나 20부작 드라마는 거의 매회 본방 사수를 하는 경우가 꽤 있지만 이렇게 긴 드라마를 본방이든 재방이든 간에 빼놓지 않고 본 경우는 거의 없었는 데다가 한 사람의 인생을 지켜본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 그런지 마치 곁에 있던 누군가를 떠나 보내는 것 같은 기분이다. 더구나 횟수를 거듭할수록 작품의 거대함을 끝까지 버티지 못하는 뒷심 부족과 초반과 달리 빈약해지는 구성과 캐릭터 설정 때문에 개운하지도 않고 아끼는 작품이 평작 수준에도 간신히 턱걸이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안타깝기도 했기 때문에 더 복잡한 기분이다.
<선덕여왕>이 초반에 비해서 힘과 재미를 잃은 이유는 이야기의 중심이 덕만 만큼이나 미실에게도 실려 있었으나 미실은 중간에 죽어야 했고 그 이후 덕만이 원톱이 되기에는 이요원이라는 배우도 덕만이라는 캐릭터도 너무 약했던 데다가 역경을 극복하고 목표에 도달하는 이야기가 목표점에 도달한 후에는 여간해서 시청자들의 흥미를 끌기 어렵다는 두 가지의 태생적인 약점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연장 방영을 실시한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글쓰기는 집을 짓는 것과 같다. 특히 드라마나 소설 같이 '이야기'를 창작해 내는 과정은 더하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작품을 건물 하나라고 본다면 작가는 무턱대고 '옛날 옛날에…'부터 시작해서 쓰면서 생각나는 대로 확장해 가는 것이 아니라 건축가처럼 자신이 생각하는 주제와 윤곽에 맞춰 이야기의 구조부터 만들어야 한다. 큼직큼직하게 이야기의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에 맞춰 내용을 구성하고 캐릭터 변화의 추이나 속도도 계획하며 드라마 작가라면 그 구조에 따른 횟수도 생각할 것이다. 이렇게 청사진을 그린 후에야 '옛날 옛날에…'를 시작할 수 있는 거다.
연장 방영은 이렇게 완성된 청사진을 바탕으로 그 건물의 모양과 크기에 맞는 토대와 뼈대를 완성하고 한 층 한 층 쌓아 올리고 있는 중에 층수를 늘릴 것을 결정하는 것과 같다. 50층으로 계획하고 짓고 있는 건물에 12층을 더 올리는 일은 그저 위로 올리기만 하면 되는 것은 아니다. 62층이 누르는 무게를 견딜 수 있는 기반과 뼈대가 필요하기 때문에 50층의 구조를 그대로 두고 위로 12층을 올린다면 그 건물은 반드시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물론, 건물을 짓다 보면 처음의 설계도를 조금씩 수정하기도 하고 계획이 바뀌기도 하겠지만 구조 자체와 상충되는 수정을 해야 한다면 그것은 수정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중도에 허물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해결되는 문제일 것이다.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건축물이라면 비용이 들어도 허물고 다시 새로 시작하는 방법도 있지만 드라마는 다시 1회부터 시작할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선덕여왕>은 50부로 계획된 드라마였고 12회 연장 방영이 결정된 것은 이미 드라마가 반 이상 진행된 시점이었다.(물론, 그 전부터 제작진과 방송국 사이에서는 이야기가 진행되었을 수도 있다.) 마지막을 향해 반 이상 달려오고 변화 발전해 온 이야기와 캐릭터들을 그때부터 속도를 늦추거나 제자리 걸음을 시켜야 하니 당연히 이야기가 느슨해지고 걸핏하면 회상 장면으로 시간을 보내고 캐릭터들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판단을 보인다. 물론 후반부 내용 중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모두 연장 방영으로 인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 중에도 처음부터 계획된 것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등장 인물의 행동이라든지 캐릭터의 변화에 설득력이 없고 그렇다보니 그 부분을 계속해서 강조하는 설명을 위한 대사들이 늘어 나는 것은 정말 안타까웠다. '재미있는 작품'으로 기억할 수 있었는데 '재미있다가 힘 빠진 드라마'로 기억하게 된 것이다.
방송국으로서는 높은 시청률의 작품을 3개월 정도 더 방송하여 광고 수익을 높일 수 있겠지만 작가에게도 PD에게도 배우에게도 시청자에게도 결국 작품 자체에도 득이 되지 않는 선택이 바로 연장 방송이다. 시트콤의 대가, 하이킥 시리즈의 김병욱 감독도 '연장에 들어가는 순간 얻는 것보다 잃는 게 훨씬 많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사실, 따지고 보면 방송국으로서도 광고수익과 시청률 수치 외에는 득이 될 것이 없다. (물론, 이것이 전부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할 말 없다.) 걸핏하면 연장 방영을 결정하는, 시청률에만 연연하는 방송사라는 오명을 얻게 되고 수작을 가질 수 있었던 기회를 평작 또는 그 이하의 작품을 보유하는 일과 맞바꾼 꼴이 되지 않는가. 게다가 연장 방영을 하면서 완성도가 떨어지다 보니 시청률도 자연히 하락하게 된다.
좋아하는, 재미있게 보고 있는 드라마가 끝나는 것은 정말 아쉬운 일이다. 특히, 중독성이 강하거나 몰입이 강하게 되는 몇몇 드라마의 경우 한 세계가 문을 닫는 것 같은 아쉬움과 허전함을 느끼게 된다. 그렇지만, 완성도를 해치면서까지 연장 방영하는 것은 더욱 보고 싶지 않다.(조기종영은 말할 것도 없다. 아! <탐 나는 도다>여!) 시청자에게도 내가 아끼는 작품이 처음 설정된 구조를 뒤흔들 만큼 위태로운 방향으로 굴러가는 것을 거부할 권리가 있지 않은가?
이제 <선덕여왕>이 대미를 장식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단지, 지난 7개월의 동반자로서 마지막을 함께 하고 싶은 마음과, 설득력을 잃어가는 내용에도 불구하고 연기력(주관적일 수 있음..-.-)으로 시청자를 설득하고 있는 김남길을 지켜 보고 싶은 팬심으로 마지막회를 기다릴 뿐.
언제쯤 시청률과 완성도를 모두 겸비한 작품을 만날 수 있으려나.
(출처:선덕퀸 블로그)
<선덕여왕>이 초반에 비해서 힘과 재미를 잃은 이유는 이야기의 중심이 덕만 만큼이나 미실에게도 실려 있었으나 미실은 중간에 죽어야 했고 그 이후 덕만이 원톱이 되기에는 이요원이라는 배우도 덕만이라는 캐릭터도 너무 약했던 데다가 역경을 극복하고 목표에 도달하는 이야기가 목표점에 도달한 후에는 여간해서 시청자들의 흥미를 끌기 어렵다는 두 가지의 태생적인 약점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연장 방영을 실시한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글쓰기는 집을 짓는 것과 같다. 특히 드라마나 소설 같이 '이야기'를 창작해 내는 과정은 더하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작품을 건물 하나라고 본다면 작가는 무턱대고 '옛날 옛날에…'부터 시작해서 쓰면서 생각나는 대로 확장해 가는 것이 아니라 건축가처럼 자신이 생각하는 주제와 윤곽에 맞춰 이야기의 구조부터 만들어야 한다. 큼직큼직하게 이야기의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에 맞춰 내용을 구성하고 캐릭터 변화의 추이나 속도도 계획하며 드라마 작가라면 그 구조에 따른 횟수도 생각할 것이다. 이렇게 청사진을 그린 후에야 '옛날 옛날에…'를 시작할 수 있는 거다.
연장 방영은 이렇게 완성된 청사진을 바탕으로 그 건물의 모양과 크기에 맞는 토대와 뼈대를 완성하고 한 층 한 층 쌓아 올리고 있는 중에 층수를 늘릴 것을 결정하는 것과 같다. 50층으로 계획하고 짓고 있는 건물에 12층을 더 올리는 일은 그저 위로 올리기만 하면 되는 것은 아니다. 62층이 누르는 무게를 견딜 수 있는 기반과 뼈대가 필요하기 때문에 50층의 구조를 그대로 두고 위로 12층을 올린다면 그 건물은 반드시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물론, 건물을 짓다 보면 처음의 설계도를 조금씩 수정하기도 하고 계획이 바뀌기도 하겠지만 구조 자체와 상충되는 수정을 해야 한다면 그것은 수정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중도에 허물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해결되는 문제일 것이다.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건축물이라면 비용이 들어도 허물고 다시 새로 시작하는 방법도 있지만 드라마는 다시 1회부터 시작할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선덕여왕>은 50부로 계획된 드라마였고 12회 연장 방영이 결정된 것은 이미 드라마가 반 이상 진행된 시점이었다.(물론, 그 전부터 제작진과 방송국 사이에서는 이야기가 진행되었을 수도 있다.) 마지막을 향해 반 이상 달려오고 변화 발전해 온 이야기와 캐릭터들을 그때부터 속도를 늦추거나 제자리 걸음을 시켜야 하니 당연히 이야기가 느슨해지고 걸핏하면 회상 장면으로 시간을 보내고 캐릭터들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판단을 보인다. 물론 후반부 내용 중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모두 연장 방영으로 인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 중에도 처음부터 계획된 것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등장 인물의 행동이라든지 캐릭터의 변화에 설득력이 없고 그렇다보니 그 부분을 계속해서 강조하는 설명을 위한 대사들이 늘어 나는 것은 정말 안타까웠다. '재미있는 작품'으로 기억할 수 있었는데 '재미있다가 힘 빠진 드라마'로 기억하게 된 것이다.
방송국으로서는 높은 시청률의 작품을 3개월 정도 더 방송하여 광고 수익을 높일 수 있겠지만 작가에게도 PD에게도 배우에게도 시청자에게도 결국 작품 자체에도 득이 되지 않는 선택이 바로 연장 방송이다. 시트콤의 대가, 하이킥 시리즈의 김병욱 감독도 '연장에 들어가는 순간 얻는 것보다 잃는 게 훨씬 많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사실, 따지고 보면 방송국으로서도 광고수익과 시청률 수치 외에는 득이 될 것이 없다. (물론, 이것이 전부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할 말 없다.) 걸핏하면 연장 방영을 결정하는, 시청률에만 연연하는 방송사라는 오명을 얻게 되고 수작을 가질 수 있었던 기회를 평작 또는 그 이하의 작품을 보유하는 일과 맞바꾼 꼴이 되지 않는가. 게다가 연장 방영을 하면서 완성도가 떨어지다 보니 시청률도 자연히 하락하게 된다.
좋아하는, 재미있게 보고 있는 드라마가 끝나는 것은 정말 아쉬운 일이다. 특히, 중독성이 강하거나 몰입이 강하게 되는 몇몇 드라마의 경우 한 세계가 문을 닫는 것 같은 아쉬움과 허전함을 느끼게 된다. 그렇지만, 완성도를 해치면서까지 연장 방영하는 것은 더욱 보고 싶지 않다.(조기종영은 말할 것도 없다. 아! <탐 나는 도다>여!) 시청자에게도 내가 아끼는 작품이 처음 설정된 구조를 뒤흔들 만큼 위태로운 방향으로 굴러가는 것을 거부할 권리가 있지 않은가?
이제 <선덕여왕>이 대미를 장식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단지, 지난 7개월의 동반자로서 마지막을 함께 하고 싶은 마음과, 설득력을 잃어가는 내용에도 불구하고 연기력(주관적일 수 있음..-.-)으로 시청자를 설득하고 있는 김남길을 지켜 보고 싶은 팬심으로 마지막회를 기다릴 뿐.
언제쯤 시청률과 완성도를 모두 겸비한 작품을 만날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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