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의 수목 미니시리즈 <히어로>. 이 작품은 본격적인 코미디 장르의 드라마는 아니지만 시청자의 눈물을 유도하는 신파와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희극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된 드라마다. 그런데 이 드라마가 자꾸 내 마음을 두드린다. 지금의 정치·사회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내용 때문이기도 하지만 중심 내용과 큰 관계없이 등장하는 장면들에 마음이 크고 작게 울린다. 그러더니 결국 이번 주 수요일에는 드라마를 보다가 찔끔찔끔 나오는 눈물을 찍어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문제의 장면은 과거 대세그룹의 재개발 사업에 대해 정보를 제공해 준 한 건설 회사 직원이 용덕일보를 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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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글로 설명해 놓고 보니, 더더욱 눈물과 거리가 멀어 보여서 쑥스럽지만 <히어로>에 나오는 이런 장면들이 내 눈물샘을 자극하는 부분들이다. 그리고 이 작품의 잔가지로 보이는 이런 장면들 역시 주제 못지않게 이 드라마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한다.
돈과 권력을 이용해, 또는 그것을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대세일보에 맞서 싸우는, 소위 대의(大義)를 위해 고군분투 하는 것만 강조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그런 대의-<히어로>의 기획의도를 인용하자면 정의와 상식-가 소박한 모습으로 일상생활에서 실현되는 것을 드라마 속에서 여러 번 보여준다.
잃어버린 강아지를 찾아달라고 부탁했던 할머니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신문사 직원들이 상주 역할을 하고 도혁의 누나 도희(장영남)가 수정을 돌보고 변호하는 등의 모습은 우리 모두의 마음이 움직일 수 있는 방향이다. 용덕일보의 기자들이 검사 앞에서 '우리도 용덕일보의 식구니까 같이 조사 받겠다'고 말하는 것도 '공권력과 거대 자본에 대한 꺾이지 않는 투쟁'이라기보다는 자신이 처한 부당한 상황과 용덕(백윤식)에 대한 걱정과 정에서 비롯된 마음에 가깝다.
이런 내용들을 통해 모든 것을 걸고 맞서 싸우는 것만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방법이 아니라는 것,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도혁의 조카 솔이가 친구들에게 용덕일보를 나눠 주고 정이가 대세일보로 딱지를 접는 것도 대세일보를 꺾는 방법이 꼭 용덕일보를 펴 내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님을 시사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마치 캠페인이라도 벌이듯이 그런 행동을 설교하지는 않는다. 그저 '당신 주변에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 모두입니다.'라고 말할 뿐이다. 최일두(최정우)와 대세일보가 대변하는 사회의 부당함과 부조리를 파헤치는 용덕일보의 기자들이 좋은 스펙을 갖춘 엘리트 기자들이 아니라 그저그런 학력과 경력의 3류 주간지 출신이고 심지어 주인공인 도혁도 강해성(엄기준)과 달리 그다지 지적인 캐릭터로 묘사되지 않는 것도 누구든지 그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역설하는 것 같다.
그래서 눈물이 난다. 슬퍼서가 아니라 따뜻하고 뿌듯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왠지 모르게 서러워서.
이게 바로 <히어로>가 가진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필요한 것은 한 명의 슈퍼 히어로가 아니라 소박한 다수의 작은 영웅들이라고 그러므로 상위 1%가 아니라 99%의 우리들이 바꿀 수 있다고 말함으로써 주는 감동 말이다.
벌써 12회까지 진행된 시점에서 <히어로>는 과연 더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까? 이런 눈물은 더 많은 사람이 흘릴 수록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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