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아직 안 보신 분들은...스포일러까지는 아니지만 미리 읽고 가시면 영화 보는 재미가 반감될
수도 있으니 내키지 않으면 보지 마세요.
영화를 좋게 보고 난 후의 느낌은 여러 가지다. 어떤 영화는 경험을 통해 형성된
감정과 울림을 만들기도 하고 또 어떤 영화는 이성적으로 ‘웰메이드’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있고. 그런 영화 가운데는 ‘웰메이드’이기는 하지만
개인적인 취향 또는 사상과 거리가 있는 것도 있다. 또 어떤 영화는 소위 말하는 ‘대작’도 아니고, 감정과 공명하는 것도 아닌데 상영시간 동안
슬그머니 내 세포들 사이로 스며들어, 마침내 영화가 끝난 후엔 마음이 적당히 부풀어 올라 해피엔딩이든 아니든 뿌듯함이
느껴진다.
<천하장사 마돈나>는 마지막 종류의 영화다. 보고 난 후, 부풀어 오른 마음이 바람이 빠져버리지는 않을지 조심스러우면서도 이런 영화를 봤다는 것 자체로 행복하게 하는 영화.
첫 장면, 화면 한쪽에 빙글빙글 돌아가는 조명이 내려오는 순간 이 영화가 어떤 영화일지 감이 왔다. ‘나를 절대 실망시키지 않을 영화’라는 생각과 함께. 영화는 역시, 반짝반짝 빛났다. 영화를 제작한 영화사 이름처럼 말이다.
그 가장 빛나는 지점은 동구에 대한 묘사다. 성적 소수자가 등장하는 상업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형화되고 과장된 몸짓과 말투 또는 예쁘장한 외모로 설정하지 않으면서도 기특하게도, -성적 소수자가 아닌- 이 두 남자 감독은 시나리오에서, 연출에서 동구를 ‘신체만 남성인 아이’로 표현하는 데 성공했다. 심지어 수술한 이후에도 예쁘지도 늘씬하지도 않다.
대신 동구는 현실적인 방식으로 살아 숨 쉰다. 짝사랑하는 선생님에게서 받은 사탕 포장지까지도 보물 상자에 모아 놓고 화장실에서 체육복을 갈아입거나 기분전환을 위해 거울 앞에서 립스틱을 바르고 월경을 하는 꿈을 꾸는 것 등은 과장된 말투와 몸짓보다 사실적이다. 류덕환의 연기도 ‘사실적인 동구 만들기’에 큰 몫을 했다. 교복 상의 주머니에 손을 넣고 얘기하거나 종종걸음으로 걷고 눈빛이나 거울 앞에서의 포즈와 표정 등 작지만 사실은 중요하고 섬세한 부분을 통해 동구를 생생한 인물로 만들었다.

이 묘사가 빛나는 진짜 이유는 편견을 깼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감독이 그리고자 하는 인물에 애정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100% 이해하고 내 이야기처럼 풀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그들의 고민을 비롯한 삶 자체에 대해 생각해 보고 고민하며 접근하겠다'는 노력이 보인다. 몽정 후의 장면과 두 번에 걸친 립스틱 바르는 장면에서도 그런 고민의 흔적이 보였다.
그 전에는 사실, 동구의 성정체성보다는 가난과 폭력적인 아버지가 상대적으로 큰 문제로 느껴졌다. 그러나 동구의 성정체성에 대해 계속해서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도 몽정 후 속옷을 빨며 흐느끼는 한 장면만으로도 신체와 정신의 성적 불일치가 열 일곱 살 소년을 짓누르는 무게를 느끼게 한다. 살며시 그 뒷모습을 안아 주고 싶을 만큼 애처롭다.
동구는 자기 방에서 립스틱을 두 번 바른다. 첫 장면에서는 만족하지만 두 번째 장면에서는 이것저것 발라도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지 못한다. 첫 장면에서는 거울 속에서 ‘여자인 자신’을 보았다면 두 번째 장면에서는 ‘남자인 자신’을 봤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친선 경기 후에 바르는 장면인데 씨름에 소질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더 나아가 시합에서 질 것이고 수술비를 구할 수 없을 거라는 불안감이 자신이 남자의 신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하고 거울 속에서 립스틱이 어색한 남학생을 보게 했기 때문이다.
동구는 ‘난 아마 못생긴 여자가 될 거야.’와 ‘난 뭐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살고 싶은 거야.’ 이 두 마디 외에는 성정체성을 말로 설명하지 않는다. 나머지는 대사가 아니라 동구의 일상을 통해 장면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표현된다. 그래서 이 영화는 중간 중간의 환타지 장면과 코믹한 인물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사실감을 갖는다.
또한 씨름이라는 소재는 ‘여자가 되고 싶은 소년’의 뒤집기 효과를 극대화하기에 잘 어울린다. 감독(백윤식)은 탈의실에서 동구에게 샅바를 매 주면서 샅바에 대해 설명한다. 샅바의 의미를 본다면, 씨름은 ‘남성적’인 운동이 아니라 ‘남자’운동이다. 동구는 이 ‘남자’운동에 소질이 있지만 그 사실이 동구에게 ‘남성성’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동구는 남성의 성기가 힘의 중심이라고 믿는 이 운동을 통해 남자의 성기를 버리고 여자가 될 수 있는 열쇠를 얻으려고 한다.
<천하장사 마돈나>는 동구를 위해 다른 인물을 버리지는 않는다. 이 영화의
애정은 동구와 같은 성적 소수자 뿐 아니라 그들을 인정해야 하는 주변에게까지 향해 있다. 늘 동구에게 친구 같은 엄마는 뺨을 때렸고 늘 폭력적인
아빠는 립스틱을 손에 들고 있는 동구를 발견하는 순간 외면한다. 그리고 엄마를 통해 아직 익숙하지 않은 ‘성적 다수자’들의 두려움을 수줍게
고백한다. 이것을 나는 아직 준비되지 않은 동구의 주변 인물들의 두려움도 일단 인정하는 몸짓으로 봤다. 그러나 엄마가 그 두려움을 동구에 대한
인정으로 변화 시키는 동안 아빠는 자신을 설득하지 못한다. 씨름대회장까지 찾아 가지만 그건 동구와의 작별의식이다. 더 이상은 막지 않겠지만 끝내
인정할 수 없어서 씨름대회를 동구가 ‘아들’로 존재하는 마지막 지점으로 보고 작별을 고한다.
만일 아빠와의 관계마저 해피엔딩이었다면 영화는 빛을 잃었을 것이다. 시합 날 아침 동구가 아빠를 뒤집기로 날리는 것은 동구가 어떤 벽을 만나든 뒤집기로 날릴 것을 의미하는 낙관적인 장면이었지만 끝까지 포용하지 못하는 아빠는 동구가 열심히 뒤집기 기술을 쓸 것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여전히 벽을 세울 것이라는 현실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동구가 주장을 상대로 우승하는 다소 비현실적인 결말에 사실감을 실어 준다. 주장이 동구에게 지게 되는 원인이 실력과 다소 먼, 어이없는 것으로 설정된 것도 오히려 동구의 우승에 현실감을 더해 준다. 몇 개월 훈련한 동구가 실력만으로 주장을 이기는 것이 오히려 영화를 그저 그런 상업 영화로 전락시키지 않겠는가.
아빠의 결정이 ‘성적 소수자’를 인정하지 못해서 내린 결론이라면 엄마는 ‘성적 소수자/성정체성’이라는 개별 문제를 아우르는 보편적 차원인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 진짜 멋진 것’이라는 명제로 동구를 이해하고 동구의 편이 된다. 이 말은 동구 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하는 이야기다. 그리고 원하는 일을 향해 나아가는 그 가슴 뛰는 순간의 행복을 즐기라고 한다. 이 열일곱 살짜리, 여자로 살고 싶은 소년은 이미 그렇게 살고 있다. 세상의 시선을 알지만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기 위해 뒤집기 기술을 배우고 행할 뿐 아니라 그 수단으로 부두에서 노동을 하든, 씨름을 배우든 그 자체를 즐기며 그 두근거리는 행복을 만끽한다. 그러므로 엄마와 감독의 입을 통해 나온 말은 동구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향한 말이었다.
내가 알면서도 갖지 못하는 인생에 대한 긍정적이고 행복한 시선을 이미 갖고 실천하며 살고 있는 아이 동구는 그래서 사랑스러운 인물이고 이것이 다소 부담스러운 소재를 안고 가는 이 영화의 매력이다. 그래서 결국에는 무대에서 Like a Virgin을 부르는 동구를 보면서 비록 예쁘장한 얼굴에 S라인 몸매가 아니어도 ‘드디어 해냈구나’라는 기쁨과 자랑스러움을 느끼게 되는 것, 그리고 내 삶을 들여다보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천하장사 마돈나>가 주는 선물이다.
* 사소한 감상 포인트!
-쓰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이상하게 한 번에 안 꿰어져서....이 만큼만...-.-;;
-동구를 괴롭히는 쌍둥이들의 교복 명찰을 주목하시라!
-동구 아빠로 나오는 김윤석 씨! <부활> 이후 여기저기에서 많이 나오는데 TV에서는 그리 좋은 작품을 못하는 것 같더니..역시 영화에서는 제대로임!
-이상아라는 배우가 주는 효과가 의외로 크다. 동구 엄마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말이 배우 이상아의 공개된 사생활과 겹쳐서인지...

<천하장사 마돈나>는 마지막 종류의 영화다. 보고 난 후, 부풀어 오른 마음이 바람이 빠져버리지는 않을지 조심스러우면서도 이런 영화를 봤다는 것 자체로 행복하게 하는 영화.
첫 장면, 화면 한쪽에 빙글빙글 돌아가는 조명이 내려오는 순간 이 영화가 어떤 영화일지 감이 왔다. ‘나를 절대 실망시키지 않을 영화’라는 생각과 함께. 영화는 역시, 반짝반짝 빛났다. 영화를 제작한 영화사 이름처럼 말이다.
그 가장 빛나는 지점은 동구에 대한 묘사다. 성적 소수자가 등장하는 상업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형화되고 과장된 몸짓과 말투 또는 예쁘장한 외모로 설정하지 않으면서도 기특하게도, -성적 소수자가 아닌- 이 두 남자 감독은 시나리오에서, 연출에서 동구를 ‘신체만 남성인 아이’로 표현하는 데 성공했다. 심지어 수술한 이후에도 예쁘지도 늘씬하지도 않다.
대신 동구는 현실적인 방식으로 살아 숨 쉰다. 짝사랑하는 선생님에게서 받은 사탕 포장지까지도 보물 상자에 모아 놓고 화장실에서 체육복을 갈아입거나 기분전환을 위해 거울 앞에서 립스틱을 바르고 월경을 하는 꿈을 꾸는 것 등은 과장된 말투와 몸짓보다 사실적이다. 류덕환의 연기도 ‘사실적인 동구 만들기’에 큰 몫을 했다. 교복 상의 주머니에 손을 넣고 얘기하거나 종종걸음으로 걷고 눈빛이나 거울 앞에서의 포즈와 표정 등 작지만 사실은 중요하고 섬세한 부분을 통해 동구를 생생한 인물로 만들었다.

이 묘사가 빛나는 진짜 이유는 편견을 깼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감독이 그리고자 하는 인물에 애정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100% 이해하고 내 이야기처럼 풀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그들의 고민을 비롯한 삶 자체에 대해 생각해 보고 고민하며 접근하겠다'는 노력이 보인다. 몽정 후의 장면과 두 번에 걸친 립스틱 바르는 장면에서도 그런 고민의 흔적이 보였다.
그 전에는 사실, 동구의 성정체성보다는 가난과 폭력적인 아버지가 상대적으로 큰 문제로 느껴졌다. 그러나 동구의 성정체성에 대해 계속해서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도 몽정 후 속옷을 빨며 흐느끼는 한 장면만으로도 신체와 정신의 성적 불일치가 열 일곱 살 소년을 짓누르는 무게를 느끼게 한다. 살며시 그 뒷모습을 안아 주고 싶을 만큼 애처롭다.
동구는 자기 방에서 립스틱을 두 번 바른다. 첫 장면에서는 만족하지만 두 번째 장면에서는 이것저것 발라도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지 못한다. 첫 장면에서는 거울 속에서 ‘여자인 자신’을 보았다면 두 번째 장면에서는 ‘남자인 자신’을 봤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친선 경기 후에 바르는 장면인데 씨름에 소질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더 나아가 시합에서 질 것이고 수술비를 구할 수 없을 거라는 불안감이 자신이 남자의 신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하고 거울 속에서 립스틱이 어색한 남학생을 보게 했기 때문이다.
동구는 ‘난 아마 못생긴 여자가 될 거야.’와 ‘난 뭐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살고 싶은 거야.’ 이 두 마디 외에는 성정체성을 말로 설명하지 않는다. 나머지는 대사가 아니라 동구의 일상을 통해 장면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표현된다. 그래서 이 영화는 중간 중간의 환타지 장면과 코믹한 인물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사실감을 갖는다.
또한 씨름이라는 소재는 ‘여자가 되고 싶은 소년’의 뒤집기 효과를 극대화하기에 잘 어울린다. 감독(백윤식)은 탈의실에서 동구에게 샅바를 매 주면서 샅바에 대해 설명한다. 샅바의 의미를 본다면, 씨름은 ‘남성적’인 운동이 아니라 ‘남자’운동이다. 동구는 이 ‘남자’운동에 소질이 있지만 그 사실이 동구에게 ‘남성성’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동구는 남성의 성기가 힘의 중심이라고 믿는 이 운동을 통해 남자의 성기를 버리고 여자가 될 수 있는 열쇠를 얻으려고 한다.

만일 아빠와의 관계마저 해피엔딩이었다면 영화는 빛을 잃었을 것이다. 시합 날 아침 동구가 아빠를 뒤집기로 날리는 것은 동구가 어떤 벽을 만나든 뒤집기로 날릴 것을 의미하는 낙관적인 장면이었지만 끝까지 포용하지 못하는 아빠는 동구가 열심히 뒤집기 기술을 쓸 것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여전히 벽을 세울 것이라는 현실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동구가 주장을 상대로 우승하는 다소 비현실적인 결말에 사실감을 실어 준다. 주장이 동구에게 지게 되는 원인이 실력과 다소 먼, 어이없는 것으로 설정된 것도 오히려 동구의 우승에 현실감을 더해 준다. 몇 개월 훈련한 동구가 실력만으로 주장을 이기는 것이 오히려 영화를 그저 그런 상업 영화로 전락시키지 않겠는가.
아빠의 결정이 ‘성적 소수자’를 인정하지 못해서 내린 결론이라면 엄마는 ‘성적 소수자/성정체성’이라는 개별 문제를 아우르는 보편적 차원인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 진짜 멋진 것’이라는 명제로 동구를 이해하고 동구의 편이 된다. 이 말은 동구 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하는 이야기다. 그리고 원하는 일을 향해 나아가는 그 가슴 뛰는 순간의 행복을 즐기라고 한다. 이 열일곱 살짜리, 여자로 살고 싶은 소년은 이미 그렇게 살고 있다. 세상의 시선을 알지만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기 위해 뒤집기 기술을 배우고 행할 뿐 아니라 그 수단으로 부두에서 노동을 하든, 씨름을 배우든 그 자체를 즐기며 그 두근거리는 행복을 만끽한다. 그러므로 엄마와 감독의 입을 통해 나온 말은 동구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향한 말이었다.
내가 알면서도 갖지 못하는 인생에 대한 긍정적이고 행복한 시선을 이미 갖고 실천하며 살고 있는 아이 동구는 그래서 사랑스러운 인물이고 이것이 다소 부담스러운 소재를 안고 가는 이 영화의 매력이다. 그래서 결국에는 무대에서 Like a Virgin을 부르는 동구를 보면서 비록 예쁘장한 얼굴에 S라인 몸매가 아니어도 ‘드디어 해냈구나’라는 기쁨과 자랑스러움을 느끼게 되는 것, 그리고 내 삶을 들여다보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천하장사 마돈나>가 주는 선물이다.

-쓰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이상하게 한 번에 안 꿰어져서....이 만큼만...-.-;;
-동구를 괴롭히는 쌍둥이들의 교복 명찰을 주목하시라!
-동구 아빠로 나오는 김윤석 씨! <부활> 이후 여기저기에서 많이 나오는데 TV에서는 그리 좋은 작품을 못하는 것 같더니..역시 영화에서는 제대로임!
-이상아라는 배우가 주는 효과가 의외로 크다. 동구 엄마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말이 배우 이상아의 공개된 사생활과 겹쳐서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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