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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zy/결국 나에 대한 이야기

<박치기>나눔과 대립에 날리는 박치기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만들어진 우리의 이야기를 보는 것은 참..새롭고도 불편한 경험이다. 사실, 생각해 보면 타인이 우리를 타자화 해서 말하는 것은 입장을 바꿔 보면 우리도 그럴 것이므로 가타부타 말하기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그 타인이 우리를 수박 겉핥기 식으로 본 후 마치 그것이 전부인양 말하는 것은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도 '건방'져 보인다.

 

 <박치기>는 재일교포의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지만 그런 불편함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영화다. 어쩌면 이미 내가 재일교포를 '우리'라고 생각하지 않아서일 수도 있지만 이야기가 단지 재일교포의 삶이 아니라 한반도의 분단 상황까지 아우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재일교포'와 '나' 사이의 정체성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사실,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세계 어디에서나 일어나는 나누어짐 또는 나눔에 대한 아픔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1960년대의 일본 사회 속에서 풀어갈 때 명확하게 보여 줄 수 있는 소재 중 하나가 바로 한국의 분단현실과 일본 내의 '조센징'을 향한 나눔(division)이었다. <박치기>가 일본인의 시선으로 재일조선인의 이야기를 하고 '임진강'에 담긴 조선인/한국인의 설움을 말해도 불편하지도 건방지지도 않았던 것은 바로 감독이 하고자 하는 대주제가 있고 그 안에서 재일조선인과 남북분단의 감수성을 담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카자키(오다기리 죠)의 술집에서 돌아오는 길에 노리오(코이데 케이스케)와 코우스케(시오야 순)가 다리 위에서 나누는 대화는 복잡하고도 이해할 수 없는 '사회'에 곧 진입하게 될 두 소년이 그 '사회'를 처음으로 들여다 보며 갖는 의문이면서 동시에 깨달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60년대 후반 일본의 고등학생에게 국한 된 것이 아니다.  

 냉전과 전쟁..대립의 시대에 보이지 않는 선도 보이는 선도 많았던 60년대가 그들의 세상이라면 보이는 선은 그 때보다 적으나 어쩌면 수많은 보이지 않는 선에 의해 나누고 나뉘어져서 대립하고 있는 21세기가 우리들의 세상이다.  

 

 경자(사와지리 에리카)를 좋아하면서 금지곡 '임진강'을 배우는 코우스케는 어쩌면 조선고 학생들과 자신 사이에, 조선부락 사람들과 일본인부락 사람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여전히 그 이유도, 깊이도 모른 채 막연한 나뉨만을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사카자키로부터 '임진강'의 의미를 듣고도 평범한 감흥만 있을 뿐 여전히 '임진강'은 경자와의 거리를 좁히는 매개체이고 경자와의 거리가 좁혀진 후에는 무서웠던 조선고 리안성(다카오카 소우스케) 패거리와도 갈등없이 친해질 수 있다.  

 

 그러나 코우스케가 공원에서와는 다른 감정으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임진강'을 부를 수 있었던 것은 자신과 조선인을 가로지르는 '선'이 단지 '다른 민족'이라는 것에서 기인한 것이 아님을 비로소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스스로도 나뉨의 아픔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영화 속 아이들은 나눔의 기준이 되는 이념에 충분히 공감하지 못 하지만 나뉨으로 인한 대립을 계속 이어간다. 이념과 역사가 만든 대립에 익숙해져서 선을 그은 이유에 통감하지 못하면서도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계속 대립하고 전쟁을 치른다. 그러나 아이들이 진짜 원하는 것은 나누어지지 않은 세상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그 대립 속에서 상처 받다가 뛰쳐나와 아기를 받으러 가고, 일본인이 눈물 흘리며 부르는 '임진강'이 흘러 나오는 라디오를 어른들을 향해 내민다. 안성이 일본 학생들에게 날리는 박치기가 대립 속에 생존하기 위한 기술이었다면 이것은 아이들이 세상을 향해 날리는 박치기이다.

 아이들은 사회 속에 그어진 선을 말끔히 지우진 못하겠지만, 세상은 안성과 그 가족을 레오폰(암사자와 수표범 사이의 새끼-모모코가 레오폰을 보고 싶어한 것은 지금 생각하니 그저 가벼운 대사가 아니었다.)을 보듯 신기하게 그러나 비호감으로 바라보겠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자기 앞의 선을 지우는 것으로 세상과의 박치기를 시작한다.

 

 이 영화는 냉전과 대립이 난무한 와중에 평화와 사랑을 노래하는 사람들이 공존했던 6,70년대에 대한 오마쥬이며 이즈츠 카즈유키 감독이 고등학생의 입을 빌어 부르는 'Imagine'이다.

 

 

 

사족 :

1. 노리오처럼 '이 다리 위에, 너와 나 사이에 선이 그어진다면...'이라고 묻기에는 이미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선이 너무 많은 걸까?

2. <왕의 남자>에 이어...어떻게 만드는 것이 well-made인지 느끼게 하는 영화였다. 이 소재 저 소재 참 많이 끌어다 쓰면서도 구심점으로 모이게 하는 힘...멋졌다.'임진강'은 마치...남-북한판 'imagine' 같았다.

3. 재일교포를 연기한 일본 배우들의 한국대사...어색하다고 투덜대지 마시라...물론 대사 자체가 어색한 한국말이라는 것은 단점이지만 배우들의 대사처리에 관해서는 투덜대지 말자. 한국사람처럼 했으면 금상첨화였겠지만 그 정도면 잘 하지 않았나? 왜, 외국 배우들이 한국어 연기할 때는 한국 배우들이 외국어 연기할 때보다 더 까다로운지...게다가 그들은 교포다...교포 친구가 있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곳에서 태어난 교포들 한국어..억양, 발음 어색하다..

4. 오다기리 죠...꽃미남인 줄만 알았는데..멋졌다..중간에 변신한 그를 보는 것도 재미. 그리고 여기저기 튀어 나오는 일본식 유머컷들...특히 '코우스케' 이름의 한자를 한국식으로 발음하는 센스^^

나도 모르게 경자, 안성, 강자 같은 조선고 학생들 이름의 한자를 일본식으로 발음해 보았다는...ㅋㅋ

5.(요건 살짝 스포일러 가능성 있음)

사실, 사카자키의 술집에서 일본인들이 조선에 대해 떠드는 장면에서 살짝 감독의 역사 정체성을 의심했으나 초상집에서 한 재일교포 할아버지가 코우스케에게 자신들의 아픔에 대해 말하는 장면에서 그 술집 장면을 통해 보여 뭘 보여주고 싶었는지 알 수 있었다.

초상집 장면은...모든 일본인들이 꼭 봐줘야 한다는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