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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zy/결국 나에 대한 이야기

<메종 드 히미코>이해하기보다는 인정하기

본 글은, 영화 내용을 다소 포함하고 심지어 결론까지도 짐작할 수 있는 글이므로 <메종 드 히미코>를 볼 계획이 있으신 분들은 살짝 피했다가 나중에 오세요~~ *^^*  

 

 

 

그들에게 그 집은 '성(城)'이다. 그 집을 나서면 경멸의 눈초리나 어린 '주류'들의 폭력을 피할 수 없지만 그 안에서는 세상과 주류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그 집은 그들이 성적 취향을 드러내고도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그 성에서의 삶이 마냥 아름답고 평화롭기만하지는 않다. 그 성은 세상과 자신들 사이에 가리개를 두른 공간일 뿐 세상과 별개의 차원에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도 바깥 세상과 똑같이 자금난을 피하기 위해 마음이 가지 않는 일도 해야하고 주류의 인생들과 똑같이 가족을 그리워하고 늙어가는 슬픔과 죽어가는 두려움을 느껴야한다. 

 

히미코는 딸에게 눈물로 사죄하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그 것은 아마 그가 여전히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고, 당당하다는 것을 딸에게 말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게이라고 해서, 자신의 성적취향을 본성대로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 가족을 등지고 사회를 버리고 산다고 해서 남겨진 사람들의 상처를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들은 아님을 히미코는 보여준다. 

그러나 그 것을 이해하면서도 여전히 내가 연민을 느끼는 건 성 안에 사는 그들보다는 사오리 쪽이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한 선택으로 상처 받고 오해를 끌어 안고 사는 그녀의 모습 말이다.  

그녀가 게이들을 싫어하는 것을 '호모포비아'라고 말할 수 없는 것도 사오리가 그들을 '게이'라서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에게 고통을 주고 떠났을 게이'라서이기 때문이다. 사오리가 야마자키와 루비의 이야기를 접하게 될 때 망설이지 않고 그들을 위로하는 것이나 히미코나 하루히코보다 다른 이들과 더 가까워지는 것도 그녀가 단지 게이를 경멸하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사실, 사오리가 결국 상처를 치유받았는지는 모르겠다. 대신 아픔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은 것이 아닐까? 그녀의 엄마가 배신감과 슬픔으로만 히미코를 대한 것이 아니었음을, 그들이 성적 취향에 충실한 삶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일반이 알지 못하는 아픔도 있음을, 그들이 단지 성욕에 좌우되는 불순한 존재가 아님을 마주하면서 히미코에게 덧씌운 미움이 한층 엷어져서 말이다.  

 

사오리와 하루히코의 불발된 섹스도 사오리가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사건이다. 여자에게 끌릴 때조차도 그 대상을 선뜻 만질 수 없는 하루히코에게 화내지 않는 사오리는 아마 하루히코를 통해, 결혼 생활을 힘들게 유지했을 히미코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루히코는 히미코보다 더 따뜻한 손으로 사오리에게 미안함을 전한다. 호소카와가 부러웠다는 그의 말은 비록 둘의 관계를 연인으로 만드는 말은 아니지만 욕망이 중단된 것이, 대상의 모호함이나 어긋남이 아니라 불가항력적인 데에 이유가 있었음을, 자신의 욕망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표현한다.  

 

이 영화는 '게이'에 대한 이해만이 아니라 나와는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를,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조금씩 다가서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한 번의 눈물, 한 번의 감동으로 갈등을 해소시키지는 않는다. 또 서로가 온전한 이해로 모든 갈등을 푸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인생 속에서도 사실 극적인 화해와 이해는 그렇게 자주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서로 다른 사람들이 잘 어울려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온전한 이해는 아닌 것 같다. 온전한 이해를 바랄수록 관계는 겉돌기도 한다. 다 알았다고 하는 순간에, 다 이해받았다고 하는 순간에 또 다시 어긋나지 않는가. 필요한 건, 다른 생각, 다른 성향이 존재할 수 있다고 인정하는 것 그리고 존중하는 것이다. 

 

찾아 오지 않는 사오리를 다시 부르는 그들과 거부하지 않고 그 집에 들어서는 사오리는 그 집에서 과거에 대한 해명이나 사과 따위는 하지 않을 것 같다. 그들이 다시 만나려 했을 때는 모든 매듭을 풀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그립고 보고 싶었기 때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