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니스는 사회 규범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는 항상 탈출하지 못하는 이유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개별적인 이유보다 그런 이유를 만들어 내도록 하는 것은 참혹한 죽음에 대한 어린시절의 기억이다. 아마, 획일적인 사회의 잣대로부터 벗어나길 바라면서도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 중에는 에니스처럼 기억에 바탕을 둔 두려움으로 인해 망설이는 또는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에니스는 그 참혹함이 자신과 잭에게도 필연적으로 발생할 것이라고 믿고 있기에 잭의 제안을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그와 헤어지지도 못한다.
처음, 예정보다 일찍 그 곳에서의 일을 접어야 했을 때 잭보다 에니스가 더 큰 동요를 느낀 것도 그가 현실에 대해 느끼는 억압과 부담이 더 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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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잭은 에니스보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며 현실에 대해서도 대담하다. 에니스가 현실적인 선택을 위해 감정을 '브로크백' 안에서의 현실로만 남겨 놓았다면 잭의 현실적인 선택은 에니스의 선택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것에 불과하다.
그는 브로크백 마운틴을 떠난 이후로 한결같이 에니스의 결단을 기다린다. 언제든, 기다리게 하는 쪽보다 기다리는 쪽이 쉽게 지치고 흔들린다. 더구나 잭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며 갈망하는 대상이 분명하고 에니스와 같은 두려운 기억이 없기 때문에 욕망을 해소할 임시의 대상을 찾기도 하고 다른 상대를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흔들림 역시 잭에게는 에니스를 기다리는 여정의 일부일 뿐이다.
두 사람에게 '브로크백 마운틴'은 그들을 억누르고 갈라 놓는 어떤 것도 없는 장소다. 그 곳은 그들이 다른 것을 고려하지 않고 두 사람 사이의 감정만으로 마주한 곳이면서 동시에 현실과 분리된, 현실의 규범과 시선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다. 내게는 사실, 영화 홍보에서 사용된 '순수로의 회귀'를 뜻하는 장소라기 보다는 현실의 편견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다.
따라서, 현실을 두려워하고 참혹한 죽음을 게이의 운명으로 여기는 에니스에게는 잭과의 만남은 브로크백 마운틴에서만 가능하지만 현실 속에서도 잭과의 삶을 이어 갈 수 있다고 믿는 잭은 브로크백 마운틴이 아닌 제3의 장소(고향)에서 잭과 목장을 운영하는 꿈을 꾼다.
딸의 결혼 소식에 흘리는 에니스의 눈물은 아버지의 눈물은 아니었다. 이제서야, 함께 목장을 운영할 수도, 브로크백 마운틴에 돌아갈 수도
없는 지금에서야 자신을 잡고 있던 현실의 고리가 모두 끊어진 것에 대한 눈물이다.
그가, 벽장 속에 걸어 둔 잭의 셔츠와 엽서 속의 브로크백 마운틴을 바라보며 속삭이는 'Jack, I swear...'는 뒤늦은 사랑 고백만은 아닐 것이다. 에니스가 이제 자신의 과거의 삶을 잭이 꿈 꾸던 삶, 그들의 사랑을 인정하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도 이상향(사랑한다는 사실만으로 그 자체로 인정받는)을 좇으며 살겠다는 그 바람 속의 삶으로 변화하겠다는 약속이 아니었을까?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에니스와 함께 움직였다. 그와 함께 잭을 사랑했고 그와 함께 현실의 무게를 느꼈으며 그와 함께 양쪽에 걸쳐 놓은 삶 때문에 힘들었고 그와 함께 잭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에니스에게는 그렇게 양쪽 다 지지부진하게 끌고 가는 삶이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서로를 지치게 하고 자신을 불행하게 하는지 말해 주고 싶으면서도 정작 나는 앞으로도 그런 지지부진함을 쉽게 끊어내지는 못할 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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