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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zy/결국 나에 대한 이야기

<린다,린다,린다>끝나지 않는 노래(2006)

 “아이를 그만두는 순간,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 (중략)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스스로 어른이 되어 간다고 느낀 순간, 사실 그 때가 언제였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어른들보다 내가 똑똑하다고 생각한 순간이었을까? 주민등록증이 발급된 순간이었을까? 아니면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처음으로 내가 세대주가 되었을 때? 어쨌든 어른이 되어 간다고 느낀 순간부터 지금까지 늘 스스로를 어른도 아이도 아닌 존재로 느꼈다. 심지어 동네 꼬마들이 '아줌마'라는 호칭을 조금씩 사용하고 있는 요즘에는 나는 내가 어른인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영화의 시작과 함께 던져진 저 질문은 영화를 보는 내내 화두로 느껴졌다. 아이를 그만둔 지도 꽤 오래된 것 같은데 여전히 어른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 나는 대체 어디쯤 있는 걸까?

  사실, 이 질문은 영화 속에서 그리 중요한 역할은 하지 않는다. 송을 비롯한 멤버들이 아이도 어른도 아닌 모호한 정체를 놓고 성장통을 겪는 것도 아니다. 단지 그 질문은 아이와 어른으로 구분되는 인간의 성장단계 속에서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는 시기의 막막함과 불투명함을 시사할 뿐이다.

  어쩌면 그 막막함과 불투명함이 쿄코와 케이, 노조미가 축제에 참여하도록 부추기는 동기가 된 것은 아닐까. 물론, 어떤 나이의 인간에게든 마찬가지지만 고등학생에게, 마지막 해를 남겨 두고 있는 고등학생에게 확실한 것은 '현재' 뿐이다.
 태어나서 18년 동안 우리들의 사회적인 위치는 세상이 정한 순서대로 흐른다. 가정이라는 울타리 밖으로는 나가지 않았다가 유치원-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스스로 순서를 정하거나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는 시기를 결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매번 한 단계를 마칠 때는 그 다음 순서가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 후의 일은 내가 결정하거나 적어도 내가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체감 불투명도'는 그 어느 때보다 높다.
 그래서 아이들은 확실한 것을 찾는다. 지금 할 수 있는 것, 지금 좋아하는 것, 지금 하고 싶은 것을.

  유학생 송(배두나)과 일본 학생들과의 관계에서도 막연한 필요는 관계와 의사소통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축제를 위해 준비한 한일 교류 행사에는 한우의 부위별 이름이 적힌 그림이 벽에 붙어 있다. 교류를 위해 마련된 것이지만 누구의 관심도 끌어 낼 수 없는 전시물은 행사를 성공으로 이끌지 못한다. 어쩌면 행사를 준비하고(교사의 지시에 의한 것이지만) 행사장을 지키고 있는 송 자신도 일본 학생들과 친구가 되고 싶지만 누구에게도 의미 없는 단어들이 배열된 교류 행사를 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송은 자신이 좋아하는 만화책을 보면서 자신과 일본어 수준이 엇비슷한 꼬마 아이를 대화 상대 삼아 부족하지만 자신만의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 송에게 마음을 고백하는 남학생은 자신의 확실한 욕구에 따라 한국말을 배워 한국말로 송에게 고백한다.
  또한 영화는 더 나아가, 의사소통 아니, 마음의 소통이라는 것이 상호간의 언어적인 완전한 이해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말한다. 처음에는 주눅든 태도로 친구들의 말에 무조건 일본어로 대답부터 하던 송이 친구들의 말에 간혹 한국어로 말을 한다.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하고 싶은 마음을 언어 능력의 부족으로 뒤로 미루거나 담아두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슨 언어를 이용하든지 언어로 표현하는 것으로 발전한 것이다.
  물론 케이 등이 송의 말을 이해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그들을 하나로 묶는 데 장애물이 되지도 않는다.

 이제 무대 위에 올라 선 아이들은 노래를 한다. <린다 린다 린다>를 부르고 <끝나지 않는 노래 (終わらない歌)>가 시작됐을 때 난 송을 비롯한 무대 위의 아이도 어른도 아닌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갈지도 확실치 않은 그들의 현재 그리고 불투명한 앞날을 긍정의 눈으로 바라 보게 될 것임을 알았다. '아이'를 그만 두었어도 그들의 노래는 끝나지 않았으며 어른이 되지 않았어도 그들의 인생은 그렇게 전진할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이 꽤 오랜 시간 스스로를 어른으로 여기지 못하는 것도 어쩌면 아직은 나쁘지 않을 거라는 작은 위안을 얻었다. 내 노래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