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지 강석호(김수로)의 과거가 정확하게 묘사되지는 않았지만 짧은 회상 장면을 통해 짐작할 수 있는 것은 그는 문제가 많은 학생이었고 그런 그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이끌어 준 선생님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덕분에 그는 -비록 사무실 임대료도 제때 못 내고 있기는 하지만-변호사까지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과거가 있기 때문에 강석호는 법인 해산을 맡기 위해 찾아간 모교를 그냥 보지 못하고 살리기로 결정한다. 이게 바로 <공부의 신>이 전개할 이야기의 시작이다. 이런 설정은 사실, 일본 드라마에서는 익숙하지만 한국 드라마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것으로 비현실적이고 만화적이기는 하지만 드라마 속의 현실과 설정 자체를 장르와 태생의-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 특성으로 인정하고 본다면 충분히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는 부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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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한국에서 학원물이 갖는 위치라는 것이 '애들이 보는 드라마'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인데 이 부분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만화적인 설정과 대사 속에서 캐릭터 자체는-특히 학생 캐릭터- 현실적이고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만화적인 설정과 재미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고 해도 시청자들을 이해하게 하고 몰입하게 하는 현실성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1,2회를 통해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학생 캐릭터가 지나치게 전형적이거나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봉구, 현정, 백현, 풀잎, 찬두
앞으로 이런, 몇몇 만화적인 캐릭터들과 과장된 캐릭터를 어떻게 현실로 안착시키고 설득시키느냐 하는 것이 <공부의 신>이 재미있는 드라마가 될지 유치한 드라마가 될지를 결정할 것이다.
또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과연 <공부의 신>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을까 하는 것이다. 꼴찌도 일류대에 들어갈 수 있는 필승 공부법? '나'도 할 수 있다는 인간 승리? 열심히 해서 이 세상의 승자가 되자는 캠페인?
1회 강당 장면에서 강석호 변호사는 학생들을 앞에 두고 일장 연설을 시작한다. 이대로 살면 너희들은 세상이 바라는 대로 패자가 될 거라고 세상은, 너희들이 열심히 살아도 계속 패자가 되도록 이루어져 있다고 그것은 룰을 만든 사람들이 나머지 인간들이 성공하지 못하도록 속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변한다.
이 얼마나 마음에 와 닿는 말인가. 사실 한수정 선생님(배두나)의 신념처럼 교육의 현장은 신성한 것이고 공부라는 것은 '앎의 즐거움'을 위해 하는 즉, 공부 자체를 위해 하는 것이라는 말이 가장 정석에 가까운 것이기는 하지만 이 말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 대상이 오래 전부터 공부와는 담 쌓고 지내는 반항적인 10대들이라면 더더욱.
강석호의 말은 병문고 학생들이 몇 년 후 학교를 떠나면 아니 학교를 떠나기 전에라도 사회에서 언제든 몸으
강당에서 연설 중인 강석호 변호사
물론, 승자니 패자니, 인생을 사회적인 성공 여부(진학 대학의 순위를 포함해)를 가지고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가치관을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것 같아서 그의 연설이 100% 공감되고 편했던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세상이 불편하고 비합리적인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입시와 진학에 빗대어 적당한 수위에서 이야기한 것이 어느 정도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한때 문제아였으나 지금은 어엿한 사회인이 된 강석호 변호사는 말한다. 세상에 속지도 않으려면 룰을 만드는 사람이 되면 된다고. 어…? 그래 이것도 역시 강석호 연설의 주제와 내용과 예견된 결말을 생각할 때 알맞은 귀결이었다. 그런데 순간 살짝 머리가 복잡해졌다. 강석호가 말에 따르면, 평범한 사람들이 세상 살기 힘든것은 승자들이 자신들을 위한 룰을 만들기 때문이다. 좋은 것은 모두 자신들이 가져서 평범한 사람들이 잘 살 수 없도록. 그러니까 평범한 사람이 되지 말고 너희들도 룰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그럼, 결국 강석호가 말하는 것은 '룰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서 너희들도 좋은 것은 너희가 가질 수 있는 룰을 만들라'는 것인가.
결국 <공부의 신>에서는 이 다섯 아이들에게 효과적으로 공부하는 방법과 공부를 하는 의미와 재미를 알려 주고 각자 자신의 상황을 극복하게 하고 그래서 룰을 만드는 사람이 되는 첫 걸음을 떼게 하는 것이 끝이라는 말인가. 여기에 좀 차별적인 결말로 그 아이 중 한 두 명은 천하대 입학이 아닌, 자신만의 꿈이라든지 목표를 찾아 천하대 특별반에서 배운 노력하는 자세를 적용하는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다 정도?
즉, 결국 <공부의 신>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 입시제도, 학벌과 학력 위주의 사회에 대한 고민과 도전 없이 이야기가 전개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저 문제적 구조 속에서 살아남는 방법 특강을 진행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이 드라마가 강조하는 것이 다 같이 잘 사는 것이 아니라 경쟁에서 살아남아 스스로 지배자가 되는 것으로 그쳐서 슬플 것 같다.
강석호 변호사는 아마 남들에게 인정 받지 못하는 대학을 나오거나 대학을 나오지 못해서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에도 학벌과 학연에 밀려 검사 임용이 되지 못하고, 변호사가 된 후에도 그런 구조를 극복하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이다. 인물 소개에도 스스로 '프로패셔널 입시 트레이너'라고 여긴다고 나와 있는 것으로 보아 아이들을 대하는 그의 자세는 철저히 현실적일 것이다. 그래서 더욱 그가 아이들에게 무엇을 보여 주고 가르칠지 걱정이 된다.
그 아이들이 천하대에 간다면 그들의 인생은 달라지겠지만 세상이 승자의 것이라는 사실은 전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어딘가에서 천하대 합격생을 배출하지 못하는 학교는 퇴출 대상이 될 것이고 누군가는 보증금도 못 받고 집을 비워야 할 것이다. 짧은 시간 안에 성적을 올리고 공부의 재미를 알아가야 하는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듯 싶지만 강석호의 연설로 시작한 만큼 강석호의 그 생각을 마무리 지어야 하지 않겠는가.
강석호가 현재의 생각과 마음을 유지하는 한 강석호의 입을 통해 아이들에게 너희들이 룰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도 지금의 지배자 같은 사람은 되지 말라고 한다면 굉장히 뜬금 없겠지만 그가 한수정(배두나)과 함께 보여 주는 앙상블 속에서 또 한수정의 세상에 대한 신념 속에서 특별반 아이들이 바람직한 세계관을 가지게 되는 과정을 보고 싶다. 또한 아이들을 둘러싼 선생과 부모의 모습에서 우리 사회가 매년 앓고 있는 입시병과 학벌위주 사회의 폐해를 고민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공부의 신>이 단순한 일본 드라마의 답습에서 벗어나고 학원물은 유치하다는 색안경을 벗기는 길이 아닐까.
강석호 변호사님, 아이들을, 당신을 삼류 변호사로 만든 그들과 같은 모습으로 만들기를 원하는 건 아니죠? 아이들에게 입시 필승법 말고 중요한 뭔가를 가르쳐 주실 거죠?
긴 글 읽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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